토계동(1,2,3통)
문헌상 土界의 지명이 처음 보인는 곳은 1789년 『호구총수』로 나주목 동부면 16개 마을중의 하나인 토계촌으로 나타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나신면 토계리가 되었으며 1929년 나주면, 1931년 나주읍에 차례로 속하였다.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되면서 송월동의 관할이 되었으며, 법정동 명칭이 토계동으로 통반설치조례의 기준에 의거 3개 통으로 분할되었으며, 1986년 나주시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은 옛전부터 토끼촌이라 불리웠는데 이는 마을이 토끼 형국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즉 머리부분이 현 나주초등학교 이화분교이고, 몸통 부분은 동주민센터(1통)가 있는 마을이 중심부분이며, 현 방죽목이라 불리우는 곳(2통)이 꼬리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1, 2통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며 제장은 동주민센터 앞에 있는 당산나무와 제단과 그 옆의 장군바위이다. 장군바위는 옛날에 영산강 물위에 떠 있는 것을 건져와 마을 앞 다리로 이용해 오다가 돌이 물위에 떠 있는 것은 영허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며 1983년도에 제장으로 옮겨와 세운것이라고 한다.
5통(송현)
지리적으로 송월동의 중앙부에 해당되며『지명총람』(1985)을 보면 동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고 할만큼 유서깊은 곳이다. 동쪽으로는 호남선을 넘어 토계·신월·망월과, 서쪽으로는 국도 13호선을 건너 흥룡마을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새월뜰의 농경지를 사이에 두고 영산강이 흐르고 있다. 마을의 남쪽으로는 나주나씨시조묘가 있고 중앙에는 전통가옥(최석기가옥)이 있다.
마을은 1912년『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나주군 신촌면 송현리로 처음 나타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나신면 송월리에 속하였다. 그후 1929년 나주면, 1931년 나주읍에 차례로 속하였고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되면서 송월동 5통으로 분할되었다.
6통(흥룡)
문헌상 興龍의 지명이 처음 보인는 곳은 1789년 『호구총수』로 나주목 신촌면 11개 마을중 大흥룡동과 小흥룡동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그 후 1912년『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을 보면 위의 두 마을이 합쳐져 신촌면 흥룡동으로 바뀌었으며,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신면 송월리 흥룡동이 되었다. 그러다가 1929년나주면, 1931년 나주읍에 편입되었다.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됨에 따라 송월동의 관할하에 6통으로 흥룡마을을 이루었으며 1986년 나주시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에 관한 전설이 전하고 있는데 왕건이 이곳 마을에 잇는 샘(완사천)에서 장화왕후를 만나 인연을 맺어 혜종을 낳았고, 완사천의 북쪽에 흥룡사를 창건하고 이와 함께 혜종사도 세워졌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또한 임진왜란때의 倡義使인 김천일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7통(내동)
마을의 지명은 문헌상 1789년 『호구총수』로 나주목 신촌면 小흥룡동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1912년『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내동으로 분리 기록되었다. 이는 그때까지 소흥룡동에 속했던 영화리, 통정리, 내동이 각각 분리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나신면 송월리에 편입되었고, 1929년 나주면, 1931년 나주읍에 차례로 속하였다.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됨에 따라 송월동의 관할이 되었고 1986년 나주시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8통(신월, 망월)
(新月) 마을의 지명이 문헌상 1789년 『호구총수』로 나주목 신촌면 본신촌의 기록이며, 1912년『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신월촌으로 되어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나신면 송월리에 편입되었고, 1929년 나주면, 1931년 나주읍에 차례로 속하였다.1981년 금성시로 승격됨에 따라 송월동의 관할이 되었고 1986년 나주시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望月) 망월의 지명이 문헌상 처음 보이는 곳은 1912년『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으로 나주군 신촌면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나신면 송월리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29년 나주면, 1931년 나주읍에 차례로 속하였다.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됨에 따라 송월동의 관할이 되었고 1986년 나주시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월과 토계마을 사이에 있어 독자적인 생활권을 형성하지 못하고 토계마을의 변천과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