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림리
- 등록일 2020.04.16 09:50
- 조회수 1444
- 등록자 관리자
楓林리 元岩마을(현 풍림리 1리)
연대는 미상이나 1600년대 초 全義李氏가 최초로 정착하였으며 原名은 元積고을이라 명하였다. 본래는 남평에 속하는 東村面 소재지권이었으며 일제후 마을 이름을 원암으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불리워지고 있다.
풍림리 竹林마을(현 풍림리 2리)
마을 설립연대는 미상이나 1600대초 河陰奉氏(현재 江華奉氏)가 최초로 정착하였다고 하며 마을 명칭은 조선시대 때 봉씨라는 효자가 모친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하여 竹筍을 찾아 통곡할 제 신이 나타나 죽순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었다 하여 죽림이라 칭하였다 한다.
풍림리 楓江마을(현 풍림리 3리)
설립연대는 미상이나 백제시대에 마을 앞으로 큰강이 흘렀는데 계속된 풍수해로 모래, 자갈이 메꾸어져 마을이 형성되었다하여 풍강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나 현재는 강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다. 김해김씨가 최초로 정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들은 그 때 심었다고 한다.
연대는 미상이나 1600년대 초 全義李氏가 최초로 정착하였으며 原名은 元積고을이라 명하였다. 본래는 남평에 속하는 東村面 소재지권이었으며 일제후 마을 이름을 원암으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불리워지고 있다.
풍림리 竹林마을(현 풍림리 2리)
마을 설립연대는 미상이나 1600대초 河陰奉氏(현재 江華奉氏)가 최초로 정착하였다고 하며 마을 명칭은 조선시대 때 봉씨라는 효자가 모친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하여 竹筍을 찾아 통곡할 제 신이 나타나 죽순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었다 하여 죽림이라 칭하였다 한다.
풍림리 楓江마을(현 풍림리 3리)
설립연대는 미상이나 백제시대에 마을 앞으로 큰강이 흘렀는데 계속된 풍수해로 모래, 자갈이 메꾸어져 마을이 형성되었다하여 풍강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나 현재는 강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다. 김해김씨가 최초로 정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들은 그 때 심었다고 한다.
- 담당부서 남평읍 총무
- 전화 061-339-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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