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리
- 등록일 2020.04.16 09:47
- 조회수 1286
- 등록자 관리자
橋院리 院村마을(현 교원리 1리)
조선세종 2년(1420년) 남평 동문밖에 향교를 건립하면서부터 최초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入鄕姓氏는 羅州林氏로 전해지고 있다. 설촌 당시 남평에서 가장 먼저 생겼고 또한 마을 형태가 제일 컸다하여 원촌이라 칭하였다 한다.
교원리 생계마을(현 교원리 1리)
세종 2년에 남평향교가 건립되면서 강릉咸氏가 생활터전을 잡았다 전해지고 있으며 향교소재 마을이라 하여 생계라 칭하였으나 현재는 잘 부르지 않고 있다
교원리 防築마을(현 교원리 2, 3리)
平山申氏가 화순에서 거주하다 外家의 養子로 입양하여 이 마을에 최초로 정착하였으며 그 후 인동 張氏가 入鄕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300년 이상된 물버들나무가 있는데 가뭄때 버들祭를 지내면 가뭄이 해소되고 풍년을 이룩하였다 한다. 마을설립당시 마을 입구에 오가리만한 방죽(둥그런 구기)과 堤防이 있었다하여 방축이라 불렀다 한다.
조선세종 2년(1420년) 남평 동문밖에 향교를 건립하면서부터 최초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入鄕姓氏는 羅州林氏로 전해지고 있다. 설촌 당시 남평에서 가장 먼저 생겼고 또한 마을 형태가 제일 컸다하여 원촌이라 칭하였다 한다.
교원리 생계마을(현 교원리 1리)
세종 2년에 남평향교가 건립되면서 강릉咸氏가 생활터전을 잡았다 전해지고 있으며 향교소재 마을이라 하여 생계라 칭하였으나 현재는 잘 부르지 않고 있다
교원리 防築마을(현 교원리 2, 3리)
平山申氏가 화순에서 거주하다 外家의 養子로 입양하여 이 마을에 최초로 정착하였으며 그 후 인동 張氏가 入鄕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300년 이상된 물버들나무가 있는데 가뭄때 버들祭를 지내면 가뭄이 해소되고 풍년을 이룩하였다 한다. 마을설립당시 마을 입구에 오가리만한 방죽(둥그런 구기)과 堤防이 있었다하여 방축이라 불렀다 한다.
- 담당부서 남평읍 총무
- 전화 061-339-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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