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리
- 등록일 2020.04.16 13:17
- 조회수 495
- 등록자 관리자
신가1리(가동)
마을형성 : 진주인 강태섭이 임진왜란때 진주대첩에서 패하자 이곳까지 피난하여 터를 잡음.
지명유래 : 마을에 자연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로 농사를 지었고, 산수가 수려하여 가동이라 칭함.
신가1리(장동)
마을형성 : 경주인 이천식이 경주에서 살다가 1600年경 이곳에 안착하여 터를 잡았다.
지명유래 : 샛터 또는 화정이라 부르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장동이라 칭함.
신가2리(청동)
마을형성 : 전주인 이흥석이 전주에서 살다가 동학란에 가담 활동 후 관군에 쫓기는 몸이 되자 1900년경 이곳에 안착하여 터를 잡음.
지명유래 : 뒷마을 상촌과 본촌을 사이에 두고 멀리 앞들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마음은 산수와 같이 맑고 풀과 같이 청동하여야 된다고 하여 청동이라 칭함
신가2리(본촌)
마을형성 : 밀양인 손승현이 한양에서 근무하다 임진왜란에 가담했다하여 다른 군졸과 전라도로 유배되어 떠돌아 다니다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명유래 : 주위 인근 마을보다 제일 먼저 터를 잡은 곳이라 하여 본촌이라 칭함.
신가2리(상촌)
마을형성 : 밀양인 박창언이 1880년경 이곳을 지나다 승려를 만났는데 골짜기에서 솟아 나는 우물을 보고 이곳에 안착하면 자손만대 번창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어 정착하였음.
지명유래 : 우물이 좋아 정촌이라 불러오다 일제강점기 후 상촌이라 개칭함.
마을형성 : 진주인 강태섭이 임진왜란때 진주대첩에서 패하자 이곳까지 피난하여 터를 잡음.
지명유래 : 마을에 자연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로 농사를 지었고, 산수가 수려하여 가동이라 칭함.
신가1리(장동)
마을형성 : 경주인 이천식이 경주에서 살다가 1600年경 이곳에 안착하여 터를 잡았다.
지명유래 : 샛터 또는 화정이라 부르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장동이라 칭함.
신가2리(청동)
마을형성 : 전주인 이흥석이 전주에서 살다가 동학란에 가담 활동 후 관군에 쫓기는 몸이 되자 1900년경 이곳에 안착하여 터를 잡음.
지명유래 : 뒷마을 상촌과 본촌을 사이에 두고 멀리 앞들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마음은 산수와 같이 맑고 풀과 같이 청동하여야 된다고 하여 청동이라 칭함
신가2리(본촌)
마을형성 : 밀양인 손승현이 한양에서 근무하다 임진왜란에 가담했다하여 다른 군졸과 전라도로 유배되어 떠돌아 다니다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명유래 : 주위 인근 마을보다 제일 먼저 터를 잡은 곳이라 하여 본촌이라 칭함.
신가2리(상촌)
마을형성 : 밀양인 박창언이 1880년경 이곳을 지나다 승려를 만났는데 골짜기에서 솟아 나는 우물을 보고 이곳에 안착하면 자손만대 번창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어 정착하였음.
지명유래 : 우물이 좋아 정촌이라 불러오다 일제강점기 후 상촌이라 개칭함.
- 담당부서 왕곡면 총무
- 전화 061-339-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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