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1259
- 등록자
- 관리자
평산리 於田마을(현 평산리 1리)
全州李氏 李河康이 전주에서 생활하다가 家勢가 어려워 정착지를 찾던 중 전담이 비옥하고 수원이 좋은 이곳에 최초로 정착하였다. 지명 유래는 당시 전답이 부족하여 주변 지형이 낮은 산을 전답으로 개간 농토를 확장하여 생활하여 오던 중 멀리서 지형을 살펴볼 때 산의 허리가 늘어진 것 같이 보였다 하여 어전이라 불려오고 있다.
평산리 平山마을(현 평산리 2리)
평산리는 원래 평야가 광활하고 수원이 좋아 농작물 재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었다 하여 평산이라 칭하였다. 이곳에 최초 정착은 密陽朴氏의 朴一奉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산리 새터마을(현 평산리 3리)
새터마을은 당초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이었으나 전답이 광활하여 晉州河氏 하지환氏가 이곳에 최초 정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새터는 전답이 비옥하고 수원이 풍부하여 농경생활지로서는 적합한 곳으로서 최초 마을을 형성한 先人들이 새로 만들어졌다하여 현재의 새터라 칭하여오고 있다.
全州李氏 李河康이 전주에서 생활하다가 家勢가 어려워 정착지를 찾던 중 전담이 비옥하고 수원이 좋은 이곳에 최초로 정착하였다. 지명 유래는 당시 전답이 부족하여 주변 지형이 낮은 산을 전답으로 개간 농토를 확장하여 생활하여 오던 중 멀리서 지형을 살펴볼 때 산의 허리가 늘어진 것 같이 보였다 하여 어전이라 불려오고 있다.
평산리 平山마을(현 평산리 2리)
평산리는 원래 평야가 광활하고 수원이 좋아 농작물 재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었다 하여 평산이라 칭하였다. 이곳에 최초 정착은 密陽朴氏의 朴一奉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산리 새터마을(현 평산리 3리)
새터마을은 당초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이었으나 전답이 광활하여 晉州河氏 하지환氏가 이곳에 최초 정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새터는 전답이 비옥하고 수원이 풍부하여 농경생활지로서는 적합한 곳으로서 최초 마을을 형성한 先人들이 새로 만들어졌다하여 현재의 새터라 칭하여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