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석리
- 등록일 2020.04.16 09:49
- 조회수 1263
- 등록자 관리자
藍石리 中藍마을(현 남석리 1리)
慶州崔氏 崔反이 광산구 大村에 살다가 父親 崔厚立이 임란 의병으로 출전하니 모친을 모시고 피난와서 최초로 안주하였으며, 그후 隨城崔氏 崔聚東은 多侍에서 거주하다 말을 타고 능주로 가다 지석강 건너편이 산세가 수려하여 이 마을에 移居하였다 한다. 砥石江 水源이 쪽(藍)같이 푸르고 지석강 바위가 웅장해서 남석이라 부르다가 남석의 중간 마을에 위치하였다 하여 중남이라 칭하였다 한다.
남석리 下藍마을(현 남석리 2리)
연대는 미상이나 坡平尹氏 尹確이 임란으로 한양에서 피난왔다가 정착지를 물색하던 중 지석산천을 따라 올라 갈 때 지석강 건너 마을이 산세가 수려하고 쪽같이 푸른 물에 도취되어 이곳 하남에 정착하였으며, 原名은 남석리로서 쪽같이 푸른 물이 흐른다 하여 쪽돌이라 부르다 마을이 上, 中, 下로 나뉘어져 한양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하남이라 칭하였다 한다.
남석리 上藍마을(현 남석리 3리)
坡平尹氏 尹華達은 지금부터 약 740년 전에 충청도에서 거주하다 이곳 지석유역을 유람할 때 물이 너무 푸르고 농경지가 비옥하여 이곳에 최초로 정착하였으며 현재까지 파평윤씨의 集姓村을 이루고 있다. 남석리 상, 중, 하남중에 한양에 가장 가까이 위치했다 하여 상남이라 칭하였다 한다.
慶州崔氏 崔反이 광산구 大村에 살다가 父親 崔厚立이 임란 의병으로 출전하니 모친을 모시고 피난와서 최초로 안주하였으며, 그후 隨城崔氏 崔聚東은 多侍에서 거주하다 말을 타고 능주로 가다 지석강 건너편이 산세가 수려하여 이 마을에 移居하였다 한다. 砥石江 水源이 쪽(藍)같이 푸르고 지석강 바위가 웅장해서 남석이라 부르다가 남석의 중간 마을에 위치하였다 하여 중남이라 칭하였다 한다.
남석리 下藍마을(현 남석리 2리)
연대는 미상이나 坡平尹氏 尹確이 임란으로 한양에서 피난왔다가 정착지를 물색하던 중 지석산천을 따라 올라 갈 때 지석강 건너 마을이 산세가 수려하고 쪽같이 푸른 물에 도취되어 이곳 하남에 정착하였으며, 原名은 남석리로서 쪽같이 푸른 물이 흐른다 하여 쪽돌이라 부르다 마을이 上, 中, 下로 나뉘어져 한양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하남이라 칭하였다 한다.
남석리 上藍마을(현 남석리 3리)
坡平尹氏 尹華達은 지금부터 약 740년 전에 충청도에서 거주하다 이곳 지석유역을 유람할 때 물이 너무 푸르고 농경지가 비옥하여 이곳에 최초로 정착하였으며 현재까지 파평윤씨의 集姓村을 이루고 있다. 남석리 상, 중, 하남중에 한양에 가장 가까이 위치했다 하여 상남이라 칭하였다 한다.
- 담당부서 남평읍 총무
- 전화 061-339-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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