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정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779
- 등록자
- 관리자
옥정 1리 (6통1반)
파평윤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로서 임진왜란 때 싸우다 지쳐 소나무 밑에서 꿈을 꾸었던 곳이라 하여 이 마을을 몽송이라 칭하였다. 마을 인근의 고인돌(18기)은 이 지역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전언에 의하면 파평윤씨 윤석주가 무안에서 살다가 처음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전주이씨와 평산신씨가 입향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파평윤씨는 거주하지 않는다. 현재 초계추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살고 있다.
2리 (6통2반)
전언에 의하면 조선시대 세조가 즉위하기 전 사육신과 관련된 사람이 본 마을에 몸을 숨기었으며 엽리장화정이라 불리우다가 후에 화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입향조는 영산신씨 초당공파 시조로부터 19세손 신방선이 왕곡면에 영산강 줄기를 타고 내려와보니 큰 바위와 넓은 평야가 있어 이곳에서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며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영산신씨, 원주이씨, 충주박씨 등이 살고 있다.
옥정 3리 (6통3반)
마을은 용이 엎드려 도약하려는 찰나의 형국이며, 마을지명도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복용이라 하였다고 한다. 순흥안씨 부제학공파 19세손인 안효길(1560~1623)이 남원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거하였다. 마을 안에는 영수재가 있는데 입향조인 안효길을 기리기 위해 1929년 후손들이 세운 제각이다. 현재 순흥안씨, 수성최씨, 나주임씨 등이 살고 있다.
옥정 4리 (6통4반)
고려 태조 왕건이 꿈을 꾼 후 영산강을 건넜다하여 몽탄이라 불렀다고 한다. 1988년 옥정리 4구로 분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언에 의하면 본 마을에 전주이씨가 처음 입향 하였다고 하나, 현재 후손이 살지 않아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현재 평강채씨, 밀양박씨, 경주김씨 등이 살고 있다.
옥정 5리 (6통5반)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새끼를 낳고,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봉추라 불렀다고 한다. 1994년 제20회 남도 문화 예술제에서‘봉추 들노래’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전통을 잇는 마을이기도 하다. 전언에 의하면 조선 중엽에는 절강편씨가 살아왔으나, 이후 밀양박씨 형제가 무안 몽탄에서 본마을로 이거한 후, 현재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현재 밀양박씨, 절강편씨, 나주나씨 등이 살고 있다.
파평윤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로서 임진왜란 때 싸우다 지쳐 소나무 밑에서 꿈을 꾸었던 곳이라 하여 이 마을을 몽송이라 칭하였다. 마을 인근의 고인돌(18기)은 이 지역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전언에 의하면 파평윤씨 윤석주가 무안에서 살다가 처음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전주이씨와 평산신씨가 입향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파평윤씨는 거주하지 않는다. 현재 초계추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살고 있다.
2리 (6통2반)
전언에 의하면 조선시대 세조가 즉위하기 전 사육신과 관련된 사람이 본 마을에 몸을 숨기었으며 엽리장화정이라 불리우다가 후에 화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입향조는 영산신씨 초당공파 시조로부터 19세손 신방선이 왕곡면에 영산강 줄기를 타고 내려와보니 큰 바위와 넓은 평야가 있어 이곳에서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며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영산신씨, 원주이씨, 충주박씨 등이 살고 있다.
옥정 3리 (6통3반)
마을은 용이 엎드려 도약하려는 찰나의 형국이며, 마을지명도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복용이라 하였다고 한다. 순흥안씨 부제학공파 19세손인 안효길(1560~1623)이 남원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거하였다. 마을 안에는 영수재가 있는데 입향조인 안효길을 기리기 위해 1929년 후손들이 세운 제각이다. 현재 순흥안씨, 수성최씨, 나주임씨 등이 살고 있다.
옥정 4리 (6통4반)
고려 태조 왕건이 꿈을 꾼 후 영산강을 건넜다하여 몽탄이라 불렀다고 한다. 1988년 옥정리 4구로 분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언에 의하면 본 마을에 전주이씨가 처음 입향 하였다고 하나, 현재 후손이 살지 않아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현재 평강채씨, 밀양박씨, 경주김씨 등이 살고 있다.
옥정 5리 (6통5반)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새끼를 낳고,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봉추라 불렀다고 한다. 1994년 제20회 남도 문화 예술제에서‘봉추 들노래’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전통을 잇는 마을이기도 하다. 전언에 의하면 조선 중엽에는 절강편씨가 살아왔으나, 이후 밀양박씨 형제가 무안 몽탄에서 본마을로 이거한 후, 현재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현재 밀양박씨, 절강편씨, 나주나씨 등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