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819
- 등록자
- 관리자
장동 1리 (5통1반)
마을은 조리형국을 하고 있으며 과거 마을에 삼포강의 수문이 있어, 수문리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통정대부를 지냈던 광산김씨 문숙공파 16세손 대옥이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이곳에 터를 잡은 후 정착하였다고 함. 현재 광산김씨, 경주이씨, 제주양씨, 무안박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2리 (5통2반)
마을의 지세가 연꽃이 피어있는 형국이어서 연화라 하였다. 마을 인근에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산포지가 있으며 3기의 고인돌이 있다. 입향조는 김해김씨 경파중 안경공파 61세손인 구직이다. 현재 김해김씨, 흥덕장씨, 밀양박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3리 (5통3반)
월감부락과 중촌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의 지형이 만호지의 터이고 형태가 달처럼 둥근형으로 이곳에 터를 잡아서 살아왔기 때문에 월감이라 하였다. 또한 마을 앞 동편에 영산강이 흘러 강물의 침식으로 마을이 반달모양으로 형성되어 월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인근에는 구석기시대의 유물 산포지가 있다. 전언에 의하면 신안주씨 덕운이 대전리에서 살다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현재 김해김씨. 신안주씨, 흥덕장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4리 (5통4반)
풍수지리적으로 소쿠리 형국을 하고 있으며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마을 뒷산을 통과한다 하여 동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전언에 의하면 처음 한양조씨가 마을의 터를 잡고 살다가 이거하고 이 후 경주이씨 성암공파 이영휘가 함평에서 본마을로 이거하였는데 현재는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현재 경주이씨, 평강채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5리 (5통5반)
지형이 동편을 향하고 있는 용의 형상이라서 용동이라 칭하였다. 1988년 장동 5구로 분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언에 의하면 영암에 살던 평강채씨 채성포가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다보니 옥년산이 명산으로 보였고 지형을 살피니, 지금 용동마을의 모양도 용이 동쪽을 향해 있는 것 같아 이 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현재 평강채씨, 제주고씨, 광산김씨 등이 살고 있다.
마을은 조리형국을 하고 있으며 과거 마을에 삼포강의 수문이 있어, 수문리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통정대부를 지냈던 광산김씨 문숙공파 16세손 대옥이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이곳에 터를 잡은 후 정착하였다고 함. 현재 광산김씨, 경주이씨, 제주양씨, 무안박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2리 (5통2반)
마을의 지세가 연꽃이 피어있는 형국이어서 연화라 하였다. 마을 인근에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산포지가 있으며 3기의 고인돌이 있다. 입향조는 김해김씨 경파중 안경공파 61세손인 구직이다. 현재 김해김씨, 흥덕장씨, 밀양박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3리 (5통3반)
월감부락과 중촌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의 지형이 만호지의 터이고 형태가 달처럼 둥근형으로 이곳에 터를 잡아서 살아왔기 때문에 월감이라 하였다. 또한 마을 앞 동편에 영산강이 흘러 강물의 침식으로 마을이 반달모양으로 형성되어 월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인근에는 구석기시대의 유물 산포지가 있다. 전언에 의하면 신안주씨 덕운이 대전리에서 살다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현재 김해김씨. 신안주씨, 흥덕장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4리 (5통4반)
풍수지리적으로 소쿠리 형국을 하고 있으며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마을 뒷산을 통과한다 하여 동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전언에 의하면 처음 한양조씨가 마을의 터를 잡고 살다가 이거하고 이 후 경주이씨 성암공파 이영휘가 함평에서 본마을로 이거하였는데 현재는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현재 경주이씨, 평강채씨 등이 살고 있다.
장동 5리 (5통5반)
지형이 동편을 향하고 있는 용의 형상이라서 용동이라 칭하였다. 1988년 장동 5구로 분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언에 의하면 영암에 살던 평강채씨 채성포가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다보니 옥년산이 명산으로 보였고 지형을 살피니, 지금 용동마을의 모양도 용이 동쪽을 향해 있는 것 같아 이 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현재 평강채씨, 제주고씨, 광산김씨 등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