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리
- 등록일 2020.04.16 14:10
- 조회수 1204
- 등록자 관리자
청송리(청송리) 1구 [이암(이암)마을]
마을형성 : 무안박씨 박겸이 무안에서 임진왜란으로 종군하다 낙오되어 호산북거십리두류산남록단에 성촌된 이암마을에 정착하였다. 이후 김해김씨족 등과 집산촌을 형성하여 거주하다가 일제시대에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두로 강제 개명. 이후 1990년 원지명인 이암으로 변경되었다.
지명유래 : 약 1600년대에 설립된 마을로서 마을지형이 지네형국인데 주위에 삵쾡이(짐승) 형태의 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지네를 지켜 주는 형태이므로 이안마을로 칭하였으나 일제시대의 행정 개편으로 윗마을을 상두라 칭하고 아래 마을인 본 마을을 하두라 칭하다 다시 이암으로 칭함.
청송리(청송리) 2구 [청용(청용)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의천이 반남면 신촌리에서 거주하다 통정대부 나평지대손께서 나의천 7대조를 모시고 청송리 청룡에 거주함
지명유래 : 500년전에 설립된 마을로서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서 그 지형 형태가 용의 형체를 닮아서 청룡이라 칭하게 됨
배출인물
김용우(이학박사)
나인집(반남면 제4대 면장)
박정남(반남면 제9대 면장)
청송리(청송리) 3구 [장송(장송)마을]
마을형성 : 양천허씨 허주가 영산포 냉산에서 살다가 농경지를 찾아서 다니다 본 마을에 안주하여 살다가 경주김씨의 부인을 맞아 결혼하였다고 함
지명유래 : 약 500년 전에 설립된 마을로 송림이 가장 무성하여 장송이라 칭하게 됨
청송리(청송리) 4구 [상두(상두)마을]
마을형성 : 함평이씨 이맹발이 다도면에 살던 중 생활하기 좋은 곳을 찾아 지금의 상두에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450년전에 설립된 마을로써 지형 생김새가 되로 가득 채워져서 넘치는 형태로 되어 있고, 항상 곡식이 충만되어 왔고, 재산을 모으면 반드시 마을을 떠나게 된다는 전설이 있으며 상두남이라고 칭하다가 일제시대부터 상두라 칭함.
유물·유적 : 청송리 고분 2기
청송리(청송리) 5구 [흥복(흥복)마을]
마을형성 : 김해김씨 김형만씨 조부께서 전북군산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정착하였으며 그때 심은 정자나무가 마을 앞에 고목이 된 채 살아 있다.
지명유래 : 마을 뒷산의 형태가 제비집형이라 하여 초창기는 부를 누릴 수 있으나 후일은 패촌이 된다고 하여 화를 면하기 위해서 흥복이라 부르면 계속 복을 누린다 하여 지금까지 내려왔음
마을형성 : 무안박씨 박겸이 무안에서 임진왜란으로 종군하다 낙오되어 호산북거십리두류산남록단에 성촌된 이암마을에 정착하였다. 이후 김해김씨족 등과 집산촌을 형성하여 거주하다가 일제시대에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두로 강제 개명. 이후 1990년 원지명인 이암으로 변경되었다.
지명유래 : 약 1600년대에 설립된 마을로서 마을지형이 지네형국인데 주위에 삵쾡이(짐승) 형태의 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지네를 지켜 주는 형태이므로 이안마을로 칭하였으나 일제시대의 행정 개편으로 윗마을을 상두라 칭하고 아래 마을인 본 마을을 하두라 칭하다 다시 이암으로 칭함.
청송리(청송리) 2구 [청용(청용)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의천이 반남면 신촌리에서 거주하다 통정대부 나평지대손께서 나의천 7대조를 모시고 청송리 청룡에 거주함
지명유래 : 500년전에 설립된 마을로서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서 그 지형 형태가 용의 형체를 닮아서 청룡이라 칭하게 됨
배출인물
김용우(이학박사)
나인집(반남면 제4대 면장)
박정남(반남면 제9대 면장)
청송리(청송리) 3구 [장송(장송)마을]
마을형성 : 양천허씨 허주가 영산포 냉산에서 살다가 농경지를 찾아서 다니다 본 마을에 안주하여 살다가 경주김씨의 부인을 맞아 결혼하였다고 함
지명유래 : 약 500년 전에 설립된 마을로 송림이 가장 무성하여 장송이라 칭하게 됨
청송리(청송리) 4구 [상두(상두)마을]
마을형성 : 함평이씨 이맹발이 다도면에 살던 중 생활하기 좋은 곳을 찾아 지금의 상두에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450년전에 설립된 마을로써 지형 생김새가 되로 가득 채워져서 넘치는 형태로 되어 있고, 항상 곡식이 충만되어 왔고, 재산을 모으면 반드시 마을을 떠나게 된다는 전설이 있으며 상두남이라고 칭하다가 일제시대부터 상두라 칭함.
유물·유적 : 청송리 고분 2기
청송리(청송리) 5구 [흥복(흥복)마을]
마을형성 : 김해김씨 김형만씨 조부께서 전북군산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정착하였으며 그때 심은 정자나무가 마을 앞에 고목이 된 채 살아 있다.
지명유래 : 마을 뒷산의 형태가 제비집형이라 하여 초창기는 부를 누릴 수 있으나 후일은 패촌이 된다고 하여 화를 면하기 위해서 흥복이라 부르면 계속 복을 누린다 하여 지금까지 내려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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