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성관
- 나주목문화관
- 금학헌(목사내아)
- 나주읍성 서성문
- 나주향교
- 주읍성 남고문
- 나주읍성 동점문
- 구 나주역
- 학생독립운동기념관
- 완사천
- 영산포역사갤러리
- 타오르는 강 문학관
- 죽전골목
- 황포돛배체험
- 한국천연염색박물관
- 국립나주박물관
- 반남고분군
1금성관
금성관은 나주가 호남의 웅도로써 그 중심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역사유적이다. 금성관은 나주목에 있는 객사이다.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관사를 말한다. 금성관은 근대에는 또 나주인 들의 항일정신을 대표하는 장소였다. 금성관은 일제 강점기에 창호·마루등 내부를 개조하여 나주군청 청사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크게 변형되었다. 그래서 1976~1977년까지 금성관을 완전해체한 뒤 거의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2나주목문화관
나주목문화관은 983년 나주목이 된 후부터 1895년까지 나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나주는 고려 성종 때부터 1895년 나주 관찰부가 설치될 때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주목이 유지된 곳이다. 문화관 내부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지방 행정 단위였던 ‘목’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향나주 목이 되다’, ‘나주목사 부임행차’, ‘나주읍성 둘러보기’, ‘관아 둘러보기’, ‘다시 태어나는 나주’ 등 8개의 주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20명에 이르는 목사들의 명패와 목사의 하루 일정 등도 살펴볼 수 있다.
나주목문화관은 나주시에서 직접 운영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3금학헌(나주목사내아)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목사들이 한양에서 나주에 내려와 산 집이 바로 나주목사 내아이다. 나주목사 내아는 지리적으로 명당자리로 꼽힌다. 마당에는 벼락을 맞아도 수백 년 째 목사 내아를 지키고 있는 유명한 팽나무가 있다. 나주시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훼손된 목사 내아를 ‘금학헌’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해체, 복원해 숙박이 가능한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재단장했다. KBS 인기 프로그램 1박2일팀이 숙박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금학헌에는 현재 6개의 방이 있다.
한두 달 전에 예약해야만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된 이 기념물에서 하룻밤 숙박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받지 않는다.
4나주읍성 서성문
나주읍성의 서쪽에 위치한 서성문은 나주읍성 수성군과 동학군의 전투, 즉 우리 민쪽끼리의 전투 역사를 가진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성문이다.
1894년 7월 1일 나주를 점령하기 위해 동학군이 서성문으로 내달렸으나 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이에 녹두장군 전봉준은 당시 나주목사 민종렬과 협의를 위해 나주읍성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그 문이 서성문이다.
1815년에 발간된 '나주목여지승람' 서문에 "영금운으로 기록된 편액이 있었다"는 기록에 따라 '영금문' 현판을 제작하여 걸었다. 영금문은 '두루 나주를 비춘다' 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예상된다.
5나주향교
나주시 과원동, 금계동에 있는 나주목 관아와 향교는 2007년 7월 31일 사적 제 483호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나주는 약 1,000년 동안 목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한 전라도의 대표적 고을이었다. 현존하는 관아 건물과 향교 건물들도 그에 맞는 수준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어 중세사회를 연구하는데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평가되었다. 둘째, 나주 향교는 평지에 들어선 전묘후학의 배치형태를 지닌 전형적인 조선시대 향교의 건축모범을 보여주는 사례이다.또한 나주향교는 조선시대 교육시설의 규모를 따지면 성균관 다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교육과 제사의 고유기능을 간직하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6나주읍성 남고문
나주 읍성의 동문인 동점문을 지나 나주초등학교 방향으로 중앙로를 달리다보면 도로 한복판에 큰 성문이 있는데, 이것이 남내동에 자리잡은 나주 읍성의 남문인 남고문이다. 남고문이라는 이름은 이 남문을 나서면서 임금님이 계신 곳인 금성관쪽을 돌아보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삼봉 정도전이 나주로 귀향 오면서 이 곳 남고문에 올라 '유부로서'를 읊었다고도 한다.
7나주읍성 동점문
동점문은 나주의 관문이자 나주읍성의 동문이다. 동점문 2층 문루에 올라서면 나주 영산강과 나주대교까지 눈에 훤히 보인다. 동점문이라는 현판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동점문은 중국의 경서인 서경에 나오는 동점 우해에서 따온 것인데, 나주천이 동쪽으로 흘러 영산강을 만나 바다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고려 말 삼봉 정도전이 원나라를 멀리하고 명나라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주장해 나주로 귀양살이를 오게 되었다.
이 때 나주 읍성 동문에 올라 ‘나주 주민들에게 드리는 글’(등나주동루유부로서)을 읽었다고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이러한 역사를 거론하며 2006년 동점문 복원 당시 현판 글씨를 썼다.
8옛 나주역
옛 나주역사는 나주인의 항일정신을 보여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이다. 1929년 10월 30일 한일 학생간의 충돌이 있었던 나주역 사건을 시작으로, 11월 3일 광주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소식은 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194개교 54,000여명이 시위운동에 참가한 역사적 사건으로 확산됐다. 현재 옛 나주역사내에는 나주역 영업당시의 개찰모습, 일제 강점기에 당시 역무원들의 근무모습이 밀랍 인형들로 재현되어있다.
역사 바로 옆에는 광주학생항일 운동 기념관이 개관해 당시의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영상자료도 볼 수 있다.
9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산실인 나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기념관이다. 나주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당시 나주역에서 나주-광주 간 기차를 이용해 통학하던 한, 일 학생의 충돌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학생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옛 나주역’ 옆에 당시의 역사를 일깨울 수 있도록, 전남지역의 식민지적 상황과 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 등을 주제로 2008년 7월 25일개관하였다. 관람시간은 평일과 주말 09:00~18:00 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10완사천
완사천은 한국을 대표하는 러브 스토리의 무대다. 고려 태조 왕건과 버들낭자가 남녀 주인공이다. 서기 911년.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싸우기 위해 행군하던 중 목이 말라 그 곳에 있던 여인에게 물을 청했다. 여인은 왕건이 혹여 체하지 않도록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어서 물을 주었다.이에 감동한 태조가 여인과 혼인하여 혜종을 낳았고 이 곳은 왕이 태어난 마을이라 하여 ‘흥룡동’이라했다. 이 여인은 훗날 장화왕후가 되었다.
지금 완사천 옆에 왕후의 비와 왕건과 장화왕후의 만남을 형상화 시킨 현대적 조각작품이 있다. 완사천은 왕건과 나주 호족세력과의 인연의 시발점이자 혜종을 낳았던 배경이 된 유적으로 나주를 어향이라고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11영산포역사갤러리
1908년 한국에 이주해 온 일본인들의 사업자금을 지원하는데 주력하였던 광주 농공은행 영산포 지점이 설립. 1918년 농공은행을 모체로 한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면서 영산포 사람들은 이 건물을 '식산은행'이라 불렀다. 2012년 9월 나주시가 매입하여 영산포 역사를 한분에 볼 수 있는 역사 갤러리로 조성하였다. 영산포 역사갤러리는 고려시대 흑산도 사람들의 이주에서 시작되어 개항 이후 호남 3대 근대도시로 성장하고 영산강의 대표도시로 발전한 영산포의 역사와 변천과정을 알리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2015년 개관했다.
12타오르는 강 문학관
문학관의 테마 인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은 1886년 노비세습제가 풀린 때부터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영산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민중의 역사를 전라도 토박이말로 그려낸 작품이다.
문학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나주지역에서 가장 큰 지주였던 쿠로즈미 이타로가 1935년경 청기와와 목재 등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다고 하며, 일본식 주택과 의향풍(서양풍을 흉내냄)의 사무소가 함께 있는 형태이다.
해방 후 선교사가 고아원으로 운영하였고, 1981년 개인이 매입해 주택으로 사용하였으며 2009년 나주시가 영산포 근대거리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했다.
일제강점기 수탈 역사의 현장인 일본인 지주 가옥을 우리 민족의 항거 역사를 다룬 소설 '타오르는 강' 문학관으로 탈바꿈하여,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나주의 상징인 '영산강'의 역사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타오르는 강 문학관」은 영산강의 인문학적 가치를 확산하는 문화 거점으로 2024년 하반기 개관 예정이다.
13죽전골목
영산포 부근의 고즈넉한 분위기의 골목이다. 죽전골목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과거 땔감시장이 섰던 곳으로 나무 장사꾼들이 동이 트기 전부터 몰려들어 그들을 상대로 '죽'을 파는 집들이 생기면서 '죽전거리'라고 불리웠다.
14황포돛배체험
영산강 체험의 백미는 황포돛배 타고 영산강을 오감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영산포 선창에서 출발하는 황포돛배를 타면 선장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황포돛배는 수백번은 오갔을 물길 위에서 황포돛배는 숱한 만남과 헤어짐 을 반복하던 사랑의 장소였다. 임을 그리워하던 눈물이 모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그곳, 석관정의 이별바위에는 애잔함이 서려있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이별바위가 당신의 사랑을 지켜줄 것이다. 황포돛배는 영산포 선창 매표소에 가면 승선할 수 있다.
왕복 6km의 뱃길은 40분 정도 걸리는데, 한 번에 기관사를 포함해 12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고 승선료는 8천원이다.
15한국천연염색박물관
나주시 천연염색박물관은 전통문화의 보존, 계승, 보급, 산업화, 연구개발 및 천연염색박물관 운영을 주목적으로 2006년 4월에 민법규정에 의해 ‘재단법인’ 으로 설립되어 한국과 나주의 천연염색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염색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상설 전시장과 자료관을 비롯해 판매장과 체험장, 교육세미나실, 연구 등을 갖추고 있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는 (재)나주천연염색박물관 운영국이 위치하고 있는데, 여기에 가면 천연염색의 역사를 보는 것과 더불어 사시사철 나주 천연염색의 대표적인 쪽, 황토, 치자 등 각종 천연염색체험을 할 수 있다.
16국립나주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은 영산강 유역에 남아있는 고고자료를 전시하고 호남지역 발굴매장 문화재에 대한 수장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내 박물관 최초로 스마트폰의 NFC기술(접촉식 무선통신)을 이용한 전시안내 시스템을 전시실 전관에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관람객이 스마트폰으로 전시 내용을 듣고, 이를 다시 SNS상에서 서로 주고 받는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6곳의 수장고 중 2곳의 수장고에 대형 관람창을 설치하여 체험전시 공간을 확대했다. 박물관 옥상정원도 개방하여 박물관의 여러 공간을 보다 생생하게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
17반남고분군
나주는 경주나 부여 못지않게 거대한 봉분 유적이 많다. 영산포에서 영암 방면으로 3km쯤 가면 반남고분군을 볼 수 있다. 고분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았던 지배층의 무덤이다. 우리나라는 삼한시대 후기인 A.D 3∼4세기에 지배층이 권위와 위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거대한 분묘를 축조하기 시작했다.고분의 분구는 돌이나 흙으로 원형, 방형, 전방후원형과 같은 형태로 쌓고 그 안에 돌방, 독, 널무덤 등을 설치했다.
이러한 고분의 매장 방법을 통하여 그 시대의 제도 · 풍습 · 신앙 등을 알 수 있고, 묻은 그 시대의 문화, 예술의 수준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