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읍성 고샅길 2천년의 시간여행 귄있는 거리, 개미진 맛
- 북망문
- 향토음식전수관
- 들독거리
북망문
1900년대 초부터 훼철되어 남고문이 마지막으로 철거된 후 성벽터는 대부분 민가가 들어서거나 밭으로 경작되었다. 1993년 남고문, 2006년 동점문, 2011년 서성문을 복원하였다. 북망문은 나주읍성의 북쪽방향으로 진출입시 사용되었던 단층의 홍예식(아치형)성문으로 1920년 발간된 「속수나주지」에 기록되어 있다. 2018년 12월 북망문 복원으로 나주읍성의 4대 성문이 완벽하게 복원되어 역사문화도시 나주의 위상을 정립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고려시대에 쌓아 조선초기에 확장하고 보수공사로 이룬 나주읍성은 길이 3.7km로 그 규모가 아주 컸고, 서울도성과 같이 4대문과 객사 동헌 등을 갖춘 전라도의 대표 읍성이었다. 동점문은 나주천이 동쪽으로 흘러 영산강을 만나 바다에 이르는 것을 뜻하고, 남고문은 남문을 지나면서 임금이 계신 금성관 쪽을 돌아 본다는 의미이며, 북망문은 임금이 계신 북쪽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랜 시간 보존되어온 역사의 상징이 허물어졌을 때의 슬픔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새롭게 태어날 나주읍성을 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소중히 지켜나갈 것이다.
나주성당
나주성당은 1935년 5월에 설립되고, 헨리 하롤드 첫 신부로 부임하였다. 이곳에는 천주교 박해시대에 나주에서 순교한 네 명의 신앙을 기리는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1956년 까리따스 수녀회가 나주성당에 첫 분원을 지었다. 그리고 광주대교구 5대 교구장을 역임한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미국 유족들로부터 영구임대 받은 유품들을 전시한다.
향토음식전수관
전라도에서는 음식에 ‘개미지다’는 말을 즐겨 쓴다. 단발적으로 좋고 마는 게 아니라 돌아서면 생각나고 자꾸만 입이 당기는 그런 맛을 말한다. 오래도록 묵힌 묵은지나 직접 담근 집된장, 잘 삭은 젓갈 같은 것이 그렇다. 나주 영산포는 적당한 기후와 풍토에 오랜 발효 숙성기술을 더해 만들어진 개미진 젓갈이 유명하였다.
서해의 싱싱한 수산물에 천일염에 손맛만 더해 자연적으로 숙성되길 기다리면 천연의 감칠맛이 응축된 젓갈이 탄생했다. 젓갈에는 짠맛과 단맛, 쓴맛, 고소한 맛 등으로 미각을 일깨운다. 자연이 안겨준 맛은 깊고도 넓다. 나주 향토음식전수관에서 젓갈의 진정한 맛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에 위기를 느끼는 요즘, 향토음식전수관에서는 젊은 청년들과 함께 교육과 체험을 통해 장맛을 기억하고, 맛의 전통을 이어갈 작업을 해 나갈 예정이다.
들독거리
머슴은 노비와 달리 고용주에게 새경을 받으며 고용계약을 맺는 농업임금노동자였다. 지금 우리가 회사를 다니다 퇴직하면 이직하듯 머슴도 계약이 해소되면 자유로웠고 자신의 주인을 바꿔 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머슴을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하고, 머슴 또한 비싼 새경을 받기 위해 자신의 기량을 보여야 했다. 이 들독거리는 주인과 머슴의 면접이 있던 장소였다.
좋은 머슴을 구해야 한 해 농사를 성공할 수 있었다. 머슴은 힘이나 경력에 따라 상머슴, 중머슴, 꼴담살이로 나뉘었는데 상머슴이 가장 훌륭한 일꾼이다. 들독거리 팽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크기의 바위들이 있었는데 머슴 후보들은 재량껏 바위를 들어보이며 힘을 과시했다. 구경꾼들은 마치 씨름경기라도 보듯 흥미진진하게 평가하며 머슴을 구하는 집주인과 함께 새경을 정했다. 이 날은 새로운 마을 일원을 맞이하는 축제의 날이기도 하였다.
또한 농사를 시작하고 마쳤을 때 모여 제사를 지낸 곳도 이곳이다. 모이면 즐겁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기에 오랜 친구처럼 가족처럼 머리와 마음을 맞대었을 것이다. 이 거리에는 그런 정겨운 이야기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