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세계 7대 전함 거북선
- 작성일
- 2022.11.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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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을 만든 과학자 나대용 장군- 71회 세계 7대 전함 거북선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저자)
(이 저작물의 저작권은 저자와 사단법인 체암나대용장군기념사업회에 있습니다. 무단전제 및 복제를 금합니다.)
2016년 4월에 미국 해군연구소(USNI)는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함 7개를 선정했는데 거북선이 그 중 하나로 뽑혔다. 다른 6개의 전함(세계 최초 원자력 잠수함 USS노틸러스 등)은 모두 1900년대 이후에 제작된 것이지만, 거북선만 1592년에 제작되어 가장 오래된 군함 자리를 차지했다. (2016.4.16. 서울경제신문)
이처럼 나대용은 창의과학 정신으로 임진왜란때 세계 7대 군함인 거북선 3척을 건조했다. 이어서 그는 1599년에 창선(鎗船) 25척, 1610-1611년에 해추선(海鰌船) 3척을 건조한 조선(造船) 과학자였다.
# 임진왜란 때 거북선은 몇 척인가?
그러면 임진왜란 때 거북선은 몇 척이었나? 1592년에 거북선은 2척(전라좌수영 본영과 방답진)이었고, 1593년에 순천 거북선 1척이 추가되어 3척이 되었다. 전라좌수영 본영 소속인 영귀선(營龜船)은 여수시 중앙동 전라좌수영 선소에서 건조되었고, 방답진 수군 소속의 방답귀선은 여수시 돌산읍 군내면 서외리 선소에서, 순천 도호부 소속 순천귀선은 여수시 시전동 순천 선소 (지금의 여수 선소 유적으로 굴강· 세검정 ·군기고 등이 있다)에서 건조되었다.
그런데 1595년에 명나라에 보낸 외교문서엔 거북선이 한산도에 5척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595년 10월 27일에 비변사는 선조에게 왜적 방비를 위해 거북선을 더 만들 것을 건의하였다.
" (...) 이미 지나간 사적에 의거하여 말씀드리면 수전(水戰)은 자못 우리 나라의 소장이요, 거북선의 제도는 더욱 승첩에 요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이 꺼리는 바가 이 거북선에 있고 강사준의 보고도 그러하였습니다.
... 지금 이 겨울철을 당하여 급급히 배와 기계를 수리하고 수군의 형세를 많이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북선이 부족하면 밤낮으로 더 만들어 대포·불랑기(佛狼機)·화전(火箭) 등을 많이 싣고 바닷길을 막아 끊는 계책을 하는 것이 곧 위급함을 구제하는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선조실록 1595년 10월 27일)
그런데 이 시기는 나대용이 강진현감을 할 때였다. 제장명은 2022년 11월18일 나주시민회관에서 열린‘임진왜란과 거북선, 나대용 구국정신의 재조명 학술대회’기조강연에서“조정에서 거북선 추가 건조 지시에 따라 거북선을 추가 건조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거북선을 몇 척 더 건조했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확인이 되지 않는다. 다만 필자 판단으로는 이후 2〜3척을 더 건조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하기까지 약 7〜8척 정도 활약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여기에 거북선 건조 전문가인 나대용의 활약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제장명, 나대용의 임란 시기 활동과 역사적 의미, 호남 사학회·(사)체암 나대용장군 기념사업회, 임진왜란과 거북선, 나대용 구국정신의 재조명 학술대회, 2022, p 34-35)
한편 1597년 2월 7일에 선조는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많이 제작하라고 전교하였다.
“... 경상좌도같은 경우는 수군이 매우 미약하니 상도(上道)의 여러 연해안 고을로 하여금 전선을 제작하고 격군(格軍)을 충당하는 일과, 황해도 역시 솜씨 좋은 목수로 하여금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많이 제작하는 등의 일을 신속히 조치할 것을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선조의 지시에 따라 황해도에서 몇 척의 거북선이 건조되었는지 확인이 안된다.
1597년 7월 16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에서 전몰하였다. 판옥선 120여 척과 거북선은 모두 불타거나 침몰했다. 이후 정유재란 중에 거북선이 다시 건조되었다는 사료는 없다.
# 그러면 이순신은 거북선을 왜 적게 만들었을까?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기념관의 설명문에는 두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조선 수군의 주력전선은 판옥선이었으며 거북선은 적진을 교란시키는 돌격선이었다. 돌격선이라는 배의 성격상 많은 수가 필요하지 않아 적게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거북선은 덮개를 덮음으로써 공간이 좁아서 군사들이 활동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이 점도 거북선을 많이 만들지 않은 한 요인으로 추정된다. (이는 나대용이 상소에서 지적한 바 있다.)
곁들일 것은 거북선은 조정의 지원 없이 이순신이 자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북선 건조 비용을 모두 전라좌수영에서 조달했다. 이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에 이순신은 본영에서 한 척, 방답진에서 1척, 순천도호부에서 1척을 만들었을 것이다.
# 임진왜란 이후의 거북선
1606년(선조 39년) 12월 24일의‘선조실록’에 실린 나대용의 상소에 의하면 1599년에 거북선이 각 영(충청, 전라좌우수영, 경상좌우수영)에 각 1척씩, 모두 5척이 배치되었다고 되어 있다.
“ 겸삼도통제사(兼三道統制使) 이운룡이 치계(馳啓)하였다.
나주에 사는 전 현령(縣令) 나대용의 상소 내용에 ‘신은 나주에서 성장하였다. ... 신묘년(1591년) 연간에는 수사(水使) 이순신의 감조전선출납군병군관(監造戰船出納軍兵軍官)이 되었다. (...) 거북선은 전쟁에 쓰기는 좋지만 사수(射手)와 격군(格軍)의 숫자가 판옥선의 1백 25명 보다 적지 않으며, 활쏘기에도 불편하기 때문에 각 영(營)에 한 척씩만을 배치하고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후략)”(선조실록 1606년 12월 24일)
이후 1716년(숙종 42년) 8월 24일의 ‘숙종실록’에는 거북선이 5척이라고 나온다.
“ ... 총합하여 논하면 제도의 전선이 남아 있는 것은 1백 21척이고 또 귀선(龜船) 5척이 있는데, 전선을 방패선으로 고쳐 만들어야 할 것은 다만 호남의 2척과 호서(湖西)의 4척과 경기(京畿)·해서(海西)의 각 3척뿐이므로 도합하여 12척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숙종실록 1716년 8월 24일)
이어서 1744년에 발행된 속대전에는 14척으로, 1808년에 발행된 만기요람에는 30척으로 나타나며, 현존하는 여러 수조도(水操圖)에는 삼도수군의 거북선이 40여 척까지 나타난다. (정진술, 조선 후기 거북선의 구조, 전남대학교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조선시기 여수좌수영의 거북선, 2009, p 105-106 )
아쉽게도 1895년(고종 32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혁파되면서 거북선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 충무공 이순신, 2006, p 91) 구례에 살았던 ‘매천야록’의 저자 매천 황현(1855-1910)은 여수에서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보고 ‘충무공 거북선 노래’ 한시를 지었다. 1) 그런데 어찌하여 황현도 보았던 거북선이 단 한 척도 남아 있지 않고 모두 사라졌을까? 정말 의문이다.
# 한편 726만명이 관람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이 7월 하순에 상영되어 거북선 건조자 나대용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대중은 임진왜란 거북선의 실체를 더욱 궁금해하고 있다.
‘한산:용의 출현 ’영화에 나오는 거북선은 과연 나대용이 건조한 거북선 그대로인가? 아니면 관중의 흥미를 자아내기 위하여 임의로 만든 것인가?
사실 1592년식 거북선은 정확한 구조와 형태는 아직도 규명이 안 되고 있다. 1910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종 저서와 논문, 정부간행물등에 게재되어 있는 거북선 도면과 모형 거북선은 1795년에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에 나오는 1795년 식 거북선이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는 주로 1795년식 거북선으로 1592년 임진왜란 해전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원식 ·이기표, 1592년 이순신 창제 귀선의 기본치수,구조, 형태의 고찰, 전남대학교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조선시기 여수좌수영의 거북선, 2009, p 8-38)
한마디로 1795년식 거북선은 전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거북선이 더욱 뚱뚱해지고 치장을 많이 했다. 즉 1592년식 거북선과 1795년식 거북선은 그 형태나 내부구조, 규모가 다르다.
(1) ‘한산:용의 출현’ 영화처럼 거북선은 충파(沖破)가 주된 활동이었는가? (2) 용머리가 들락날락했는가? (3) 철갑선인가? (4) 내부구조는 2층인지, 2.5층인지, 3층인지? (5) 승선 인원은? 격군과 사수·포수는 각각 몇 명이었나? (5) 용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나? 등 구명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
따라서 세계 7대 군함인 임진왜란 거북선에 대한 학술대회를 조속히 열었으면 한다.
주1) 황현의 거북선 한시이다.
(전략)
좌수영의 남쪽 문이 열리고
북소리 둥둥 울리며 거북선 나타나네
거북 같으나 거북이 아니며 배 같으나 배도 아니고
판옥 둥근 것이 고래 거품 뿜듯 헤쳐 나가누나.
네 개 발은 실새 없이 차바퀴 마냥 돌아가고
비늘 돋친 양 겨드랑이엔 창구멍이 뚫렸어라.
스물 네 개의 긴 노는 물속에서 춤추는 듯
밑창에서 노꾼들이 앉았다 누웠다 노를 젓네
코로는 검은 연기 내뿜고 두 눈은 불길 마냥 붉게 타며
길게 펴면 용이 헤엄치는 것 같고 움츠리면 자라같구나.
(중략)
2백년이 지난 오늘, 땅이 다시 허물어져
연기 뿜으며 중기선이 동쪽 바다를 달리는 구나.
불길 타오르는 조국 강토에는 범 같은 서양 사람들 몰려오고
하늘에 사무쳤어라. 도살하는 총탄이 울리는 소리.
이충무공 같은 애국 명장이 있다면
나라 살릴 방책을 생각해 내리라.
거북선 만들어 이긴 그 묘한 지혜로 적과 맞선다면
왜놈들도 무릎 꿇게 할 것이고 서양 사람들도 멸할 것이다.
(김세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p 146-1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