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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대에 임무를 부여한 김천일의 치밀한 전투전략으로 진주성 1차전에 승리한 기세를 이어 진주성이 무너지면 호남은 물론 나라가 망한다는 일념하에 진주성 2차 전투의 초반전까지는 아군의 일사분란한 대응으로 왜군을 제압 패퇴하였다. 후반전에 들어서 충청병사 황진과 6촌동생 황대중 진주목사 장윤도 등이 수시로 성을 돌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격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반면에 독전장을 맡게된 서예원은 겁이 많아 울면서 순시하는 모습에 군사들의 사기가 저하되며 동요하게 된다. 가장 믿음직한 황진 장윤 이종인의 3장수 전사로 아군의 사기가 저하된 찰라 왜군들이 성 안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쳐 순식간에 대세가 기울어졌다 김해부사 이종인은 마지막 죽음에도 왜군 2명을 양 옆구리에 끼고 남강에 투신한 애국심에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 때 김천일의 심덕은 어떻하였을까? 를 생각해본다. 실감있게 연재해간 정찬주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진주성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는데 성 밖에서 싸우자고 했던 의병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가또와 고니시가 총사령관으로 왜군 최고의 맹장인데 숫적으로 열세이고 무기도 왜군은 '조총'이라는 신무기가 있어 그 위력은 화살과는 비교할 수 없지 않았을까, 황진의 말도 일리가 있어 성밖에서 유격전을 펴줘야 적들이 맘놓고 공격을 못했을듯 합니다, 오로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모인 사람들, 마지막까지 왜군 두 사람을 양팔에 끼고 강물에 뛰어든 이종인의 최후가 비장합니다.
겁먹어 아군 의병들 앞에서 질질짜며 아군의 사기를 오히려 저하시키고 전투중에는 어디서 뭘하는지 보이지 않고 도망만 다니고 ~~ 안타깝습니다 어찌보면 결과 뻔한 싸음을 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 김천일 , 이종인 , 장윤, 황진장군 모두가 훌륭하듯이 이름없이 빛도없고 초개같이 사라져간 이름모를 장삼이사 의병들에게도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사는 적덜이 두더지멩키로 성벽을 뚫는 디도 막지 않고 멀 혔소?”
이번 31회를 읽고 2차 진주성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였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피아간에 모든 전략 전술과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은 총동원한 그야말로 총력전이었다.왜군은 1차 진주성 전투에서 무참히 패한 것을 되갚고야 말겠다는 전의에 불탔을 것이고,아군은 진주성이 무너지면 호남이 무너지고, 호남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절박감이 가득하였을 것이다.고구려 때 당태종이 안시성보다 높은 토성을 쌓고 양만춘은 또 그 토성을 무너뜨린 전략.행주산성 수성전 때 아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가져와 던지고 끓는 물을 내려 부었던 전술 등.전투 초반에는 아군의 일사분란한 대응에 왜군이 번번히 패퇴하였다.충청병사 황진과 6촌 동생 황대중이 말을 타고 수시로 성을 돌며 병사들을 격려하여 사기를 북돋웠다.임시 진주 목사 장윤도 마찬가지로 용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종인 또한 병사들에게 큰 기둥이었다.그러나 성을 돌며 독전을 하던 황진에 이어서 장윤과 이종인마져 전사한다. 가장 용맹스럽고 믿음직스러운 세 장수가 전사하였으니 이제 누가 있어 앞장서서 적을 막아낸단 말인가.아군은 사기가 떨어지고 전력은 급격히 약화되었으며, 왜군은 반대로 기세가 등등 하였다.경상도 의병들은 어찌하여 왜군 후방을 조직적으로 공격하여 적을 교란시키지 못하였던가?황진이 김천일에게 "수성만 할 것이 아니라 가끔씩 성문을 나서 공격도 하자"고 했을 때 왜 들어주지 않았던가?어쩌자고 서예원 같은 졸장부에게 독전장을 맡겨 울면서 순시를 돌아 군사들이 동요하게 하였던가?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기둥같은 세 장수가 전사하고 왜군들이 성안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치자 순식간에 대세는 기울어진다.김천일도 이제 틀렸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마도 어떻게 죽느냐를 결단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김해부사 이종인은 적들을 다 죽이지 못하고 강물에 뛰어드는 것이 한스럽노라"라고 외치며 왜군 두 명을 옆구리에 끼고 남강에 투신한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았으리라. 촉석루 의암에 논개의 절개만 있는줄 알았더니 수많은 우리 의병들의 피도 섞여 있었구나. 원통하고 한스럽도다.
치열한 진주성 전투 그중 김천일 의병장과 선봉에서 용감히 싸운 이종인 활로써 왜적 수십명을 사살하고 마지막순간에 왜군 두명을 겨드랑이에 낀채 남강에 뛰어 들어 비장한 죽음을 맞이한 충성심, 그에 견주어 서예원의 비검함 인간은 어떻게죽느냐가 그 사람을 평가 한다. 김천일과 이종인은 영원히 사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진주성 전투 2 에서 새로운 역사 공부를 하고 간다 . 촉석루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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