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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무기에 여름에 입었던 무명 홑바지저고리를 겨울에도 전투복인 양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의병군들의 현실이다. 이런 의병군들을 두고 함부로 입방아를 찧어대는 행재소 비변사 대신들의 행태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김천일 의병장도 오죽했으면 더는 참지 못하고 선조에게 눈물로 상소문을 써서 호소를 했을까. 오직 백성을 구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기 위해 나선 의병군들이다. 장한 의병군들이 대우를 받지는 못할 망정 무시당하고 설움 받는 일은 없어야 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도성을 탈환하여 행재소에 계신 임금님을 모셔오겠다는 일념하에 계획적인 전술로 선유봉 기습작전에 성공한 뒤 다음 전투를 위해 온 전력을 다하고 있는 김천일에게 치사는 커녕 "비변사 대신들의 말에 공이 미미하다" 라는 혹평을 들은 후 붓을 들어 그동안 강화도에서 지냈던 과정과 김천일의 품고있는 뜻을 기록한 상소문을 보내면서 의병 군량도 부족한 군량미를 의주 행궁에 계신 임금께 보낸 이 충신을 전선에 싸우지도 않는다는 대신들의 비난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목숨을 걸고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건만,시정 무뢰배 같은 향병으로. 표헌하는 행재소비변사 대신들이 가소롭다 훈련시키고 싸우기에도 힘겨운데 이들에게 대꾸하는 상소문까지 올려 억울함을 풀어야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날은 춥고 고질병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도 시정 무뢰배 같다고 비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훈련으로 강군으로 키워가는 김천일장군과 의병들이 자랑스럽다.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 알찬 전공을 세웠지만 치사는 커녕, 비변사 대신들의 ‘공이 미미하다’라는 혹평을 들은 김천일의 억울한 심정이 공감됩니다. 의병이 먹을 군량을 줄이면서까지 행재소로 군량을 보내려하는 김천일, 전쟁이 나자 명나라로 내부를 하려했던 선조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옳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이번 26회를 읽고 의병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직 백성을 구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기 위하여 지원한 의병이 아니던가?무기라야 죽창이 고작이고, 전투복은 커녕 여름에 입던 옷을 겨울에도 그대로 입을 수 밖에 없고,군량도 스스로 조달하지 못하면 굶을 수 밖에 없었던 의병.거기다 훈련을 재대로 받은바 없으니 일대일로 적과 붙으면 상대가 될리 없었을 것이 뻔하다.따라서 아무리 유능한 지휘관이 의병을 지휘하여 작전을 한들 그대로 될리가 있겠는가?그러니 의병부대는 관군의 뒤치닥거리나 하고, 단독으로는 기습작전만이 승산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김천일의 나주의병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편에 속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우선 군량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창의사 제수 이후 무기도 제법 갖추었다.거기다 전라방어사 군관들로부터 체계적인 군사훈련까지 받았다.각개전투는 물론 행군시 대형에서부터 공격과 후퇴 시 대형까지 배웠다.형편이 이런 나주의병도 대장이 다른당 사람이라하여 행재소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다.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유성룡마져 임금에게 "거사의 뜻은 크나 공은 미미하다"고 비난하였고,선조가 "김천일 의병군은 강화도에 한번 들어가더니 어찌하여 다시 나오지 않느가?"고 묻자예조판서 이덕형이 "김천일 휘하에는 적을 막을 만한 장수가 없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아뢨다.이런 소식을 들은 김천일 의병장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꼬. 더군다나 거동조차 불편한 환자의 몸으로.김천일은 더는 참지 못하고 행재소 임금에게 억울함을 호소한다.강화도에 틀어박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눈물로 상소문을 썼다.전라관찰사 권율에게도 합동작전으로 도성을 탈환하면 어떻겠느냐며 편지를 보냈다.그러나 권율의 계획은 달랐다. 왜군을 행주산성으로 유인하여 멸한 후 도성을 탈환한다는 것.모쪼록 의병들이 무시당하고 설움받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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