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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와 당쟁 어릴 때 삼국지를 보기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조금 커서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적어가면서 날이 새도록 읽었던 기억이 난다. 1573년 손자병법의 풍림화산을 도입한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노부나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의 전투 중 병사하였다. 다케다 신겐의 죽음의 원인이 조총 피격에 의한 부상이었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한때 총애했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혼노지에서 죽었다. 158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반대세력을 모두 굴복시키고 일본을 통일함으로써 모모야마 시대를 열었다. 그야말로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약육강식의 격랑의 시대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선봉장 중이 한명인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을 받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와 박해가 본격화 된 게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된 신해박해이다. 그 뒤로 신유, 기해, 병인박해 등이 이어졌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살아 남기위해 실용으로 무장하여 조총을 받아들이고 상업을 권장하였으며 기독교 신자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조선 침략의 선봉으로 삼았다. 조선은 건국 이후 중국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오로지 정권을 잡기 위해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당파싸움에만 몰두하였으니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조회나 하례 때 근정전 품계석 정1품 동인이 방귀를 끼면 그 뒤에 앉은 종1품 서인은 “저놈의 영감탱이를 어떤 수를 써서라도 끌어내리라” 이를 갈았으리라. 수신사로 파견된 유학자들은 히데요시의 얼굴이 쥐새끼 같다느니 하며 외모로 일본의 통치자를 평가하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7년의 비극적인 전쟁이 터졌다. 부산진첨절제사인 충장공 정발 장군의 효심에 감읍하지 않을 수 없다. 첩 애향의 의기 또한 고고하기 그지없다.
왜군이 침입해 올 것이라는 황진의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고니시의 대장선을 선봉으로 칠백여 척 왜선들이 침략을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남해에는 비밀리에 건조한 거북선을 여수 앞바다에 띄운 채 기다리고 있는 이순신이 있어 믿음직 하다. 부산진 첨사 정발은 부임하자마자 전운을 실감한다. 성을 보수하고 전력과 무기를 점고하는 등 방비에 진력해 왔지만 중과부적일 듯하다. 맨처음 왜적의 침입을 발견하고 서둘러 전령들을 보내 긴박함을 알리게 한다. "충과 효를 함께 다할 수 없으니 불효자식을 걱정하지 말라"는 자식에게 "가거라. 네가 가서 충신이 된다면 나 또한 여한이 있겠느냐." 정발의 홀머니 당부가 가슴을 때린다. 그 아들에 그 어머니다. 아마도 충신은 어머니가 만드는 것 아닐까.
갑자기 나타난 왜군 칠백여척, 막연하게 예견하기는 했지만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부산진첨사 정발의 긴장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죽을각오로 최선을 다하고는 있으나 평소 조금씩이라도 대비를 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자가 벼슬길에 오른 것은 오로지 어머님을 기쁘게 봉양코자 함이었으나, 이미 임금님의 신하가 되었으니 또한 마땅히 나라 일을 위해 죽어야 할 것입니다. 충과 효를 함께 다할 수 없으니 어머님께서는 불효자식의 일을 걱정하시지 마옵소서.” 왜적과 일전을 앞두고 부산진 첨사 정발의 고뇌를 알 수 있다. 충과 효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본인이 처해 있는 상황이 효를 행할 수 없음을 의미하여 애절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들 정흔에게 홀어머니와 부인 임씨를 봉양하도록 보내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거뭇거뭇한 왜선들은 마치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처럼 공격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왜놈들은 호시탐탐 우리의 목을 노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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