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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사김천일,경상우병사최경회,해남의병장민영운,광양의병장강희열등 모두가 목숨을 내놓고 싸움에 임한분들, 나주에서 출병하여 독성산성전투 강화도 이진,한강양화도전투까지 승리를 거두며 이땅을 지켜내신 김천일장군, 진주성 전투에서 패색이 짙자 더러운 왜군에게 몸을 맡길 수 없다며 아들 김상건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최후를 맞이한다 제행무상, 이세상 만물은 영혼한것이 없다지만 김천일장군의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대대손손 영원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중심에는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일깨워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기에 더 영원하리라 생각합니다 32회동안 연재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날씨가 점점추워옵니다 늘 건강 잘 챙기십시오 ^~^
1차전 싸움에 지친 후에도 우리 관군과 의병들의 치열한 전투로 일단 왜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제 마지막 최후 전투라 생각하고 진주 판관 성수경을 불러 성안에 있는 소를 모두 잡게 하여 군사들에게 비빔밥으로 육회를 넣어 먹인 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를 불러 집안에 대를 이어야 하니 성을 나가라 명하지만 오직 사즉사만이라 하며 죽기로 싸운다 하는 고종후의 애국심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촉석루에서 비빔밥을 먹고 진지로 나갔던 태인 의병장 강희열이 분기 탱천하여 의병 몇 십명을 데리고 적진 아수라장으로 돌진한다 성 안에 이미 왜군들의 괴성과 조총의 총칼이 촉석루 지붕에 비오듯 떨어진다. 이 때 진주판관 성수경이 달려와 창의사 김천일에게 잠시 피신해야 더 싸을 수 있다고 권유하나 김천일은 6월 3일 나주에서 출병하던 날이 내 죽음을 각오한 날이였는데 오늘까지 이어온 것이 기적이 아닌가? 하며, 지금까지 싸워온 전투들의 광경을 회상하며 눈을 감고있을 때, 김천일의 장남 상건과 양산숙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나는 이미 내 목숨을 내놨으나 너희들이 가엽구나.. 하고, 관복을 바르게 입고 북쪽을 향해 4배 올리고 있을 때 김천일을 애워싸고 있는 순간 왜군이 촉석루 둔덕 머리까지 나타나 위협하고 있어 내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왜적들에게 더럽힐 수는 없다 하며 최경회에게 살아남아 다음 일을 부탁하며 죽음을 각오한다. 아들 김상건의 부축으로 부자가 함께 남강에 몸을 던지려 하자 양산숙도 함께 하니 3장사라 불리던 최경회와 고종후도 몸을 날렸다. 이어 황진의 6촌동생 황대중을 비롯 여러 의병장과 관군 장수들의 충의는 숭고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허망하게 진주성 싸움이 끝나버렸다. 비록 진수성 싸움에 실패했으나 김천일이 뜻한 호남을 지키기 위해 진수성을 지켜야한다는 주장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명인 호남정벌을 실패하게 된것이다. 비보를 들은 김천일의 차남 김상곤과 이성찬이 진주로 가 창의사 김천일의 유물과 머리카락을 수습하여 흥룡마을 양성이씨 선산인 금성산 자락에 안장하게 되었다. 태어나 어려서부터 보살펴 큰 일을 할 수 있을 때 까지 친자식 처럼 함께한 이광익 외숙님의 집안에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마지막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한 창의사 김천일의 충과 효는 오늘을 살아간 우리들에게 사표가 되어 영원한 역사의 인물로 숭앙받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정찬주 영산강의 꿈을 32회로 끝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과 작가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본 소설로 인하여 역사소설의 대가로 더욱 더 성장발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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