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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 고경명 선생이 금산전투에서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간재 김천일 의병장 선조보다 더 총명했다는 왕세자 광해군의 활약 내용이 담겨있는 강화도 이동편 金千 鎰 이름 뜻을 풀이해보면 鎰은 금 24량을 표시한 글자이니 金千鎰은 금 2만4천량을 의미하지 않을까? 건재 문열공은 세상에 무거운 이름을 남겼는데 어찌 광해군은 임란당시 많은 백성으로부터 추앙을 받았는데 폭군으로 후세에게 이름을 남겼을까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을 오늘도 찾는다.
김천일 의병장은 독성산성에 계속 주둔하고 있다가는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린다.참모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전한 강화도로 이동하기로 결정한다.강화도의 장점은 나주에서 선박을 이용하여 군량미를 실어오기도 용이하고,한양 도성으로 진격할 때도 한강을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한편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고 수안에 머물면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항전을 독려하고 있었다.그런 광해군에게 김천일이 보낸 승첩장계는 더 없는 희소식이었으리라.그도 그럴 것이 의병이 승전하였다는 보고는 김천일 의병장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오죽이나 감격하였으면 장계를 읽다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광해군은 상거지꼴을 하고 승첩장계를 가져온 임환의 옷부터 갈아입히라고 한다.그리고 즉석에서 6품에 해당하는 벼슬도 내리고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할말이 있으면 하라고 한다.임환은 오직 충성심에서 "수안은 평양과 가까워 위험하니 더 남쪽으로 내려가시라."고 고하였다.광해군은 임환의 손을잡고 "그렇지 않아도 이천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며 임환의 충성스런 말에 감복하였다.김천일이 강화로 가는 길을 강행군하여 강화 인근에 도달하였을 때 의병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도중에 합류한 경기도와 충청도 의병들이 슬그머니 흩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강행군을 하였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밤중에 수천 왜군의 기습에 큰 일을 당할 뻔 했다.강화도에 도착한 나주의병들은 몇달만에 생선국을 먹고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한양탈환 연합작전을 기다린다.이제 김천일의 나주의병은 광해군이 가장 신임하는 군사가 되었다. 그들의 앞날에 승리만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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