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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주 종사관의 애국충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양화도 전투시 유진장만 시킨다고 김천일에 서운한 표정에 다음 전투에 출전할 것을 약속한 것이 생각난다 이번엔 대장이 되어 선두에서 지휘하며 오직 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으로 죽음을 무릎쓰고 싸우다가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이광주의 애국심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며 너무나 안타깝다. 이광주 종사관의 유해를 보고 통곡하는 김천일이 만고충신 이공광주 의사로 쓴 무명천으로 덮어씌운 김천일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이토록 우리 나라는 700회의 외침속에 우리 선조님들의 피로지켜온 나라임을 실감하게 한다. 본 소설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해가시는 정찬주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행주산성을 무심히 관광하였던 기억이있다. 권율 전적지 그리고 이 지방 장성 출신 변이중 선생의 화포 위력이 대단했던 기억이 있다 임진왜란 3대첩 하나 보성출신 선거이 장수 이름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외침 932 회이고 그중 일본 외침이700회나 된다고 하니, 우리 선조님들께서 피로 지켜온 나라이다 그중심에 맨처음 호남 의병을 이르키신 김천일 대장의 숭고한 희생 정신에 머리를 조아리며 이광주 순절 편을 한줄 한줄 가슴에 새기며 읽었다. 역사 소설은 또 다른 역사의 기록이다. 작가님의 역사의식에 감사를 표한다.
의병군과 관군과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네요. 지휘체계가 다르고,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기득권을 따지려 했을 것 같으니 그 밑의 병사들은 혼란스러웠을 듯 합니다. 적을 물리치겠다는 생각이 앞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우다가 너무 빨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이광주 대장의 마지막이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눈에 띠지 않게 많은 활약을 해왔던 막둥이의 행방불명 또한 아쉽습니다. 명군도 당시 우리백성들에게는 큰 짐이었을 듯 싶네요. 그들의 의식주를 우리가 다 해결해 주어야 했고, 우리의 상전 행세를 하는 명군 또한 백성들에게는 왜군 못지않은 두려운 존재였을 듯 합니다.
관군과 의병군이 함께 힘을 모은다고 해도 모자랄 전황이다. 그런데 관군들의 행태에 김천일 의병장은 불만이었다. 관군들은 태조와 선의왕후의 위패를 강화객사에 봉안한 성과도, 양화도 선유봉 기습작전의 전과도 폄하하려고 들었다. 심지어는 틈만 나면 의병군들을 회유해 관군으로 차출해 갔으니 오죽했으랴. 종사관 이광주가 백여 명 특공대를 이끌고 왜군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했다. 이광주 종사관의 유해를 보고 통곡하는 ㅇ김천일 의병장의 모습이 고단하다.
이번 27회를 읽고 김천일은 겨우 1천여 명의 의병장으로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마치 율곡 이이가 병조판서에 머물다 무리하여 병사 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자신이 지휘하는 소부대만의 작전과 전과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를 내다 보는 안목을 가진 김천일.자신이 승전하면 조선 육군전체에 어떤 이득이 있고, 적에게는 어떤 손실을 미칠 것이라는 것까지 계산한 작전.그러나 아무리 큰 그림을 그려본들 나주의병들 만으로는 큰 성과를 내기는 불가능했다.창의사를 제수 받았다고는 하나 관군 지휘관들로부터 별 도움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도움이라고 해봐야 무기를 지원받고 군관들로 부터 의병 훈련을 지원받은 정도에 그쳤던 것이다.툭하면 의병을 관군으로 차출하고, 의병의 승전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이번에도 김천일은 명나라 이여송에게 조선군 통수권자나 해야 할 큰일을 행한다.한양 탈환에 반듯이 알아야 할 왜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러 특사를 파견한 것이 그것이다.아울러 특사는 평양성에서 퇴각하는 왜군을 타격하는 임무까지 병행토록 했다.그 책임자 이광주가 1백여 명의 특공대를 이끌고 무리하게 왜군을 공격하다 순절하였던 것이다.김천일은 분조에 사람을 보내서 전황을 상세히 보고하여 세자를 안심시킨바 있다.또한 행제소에는 의병들이 먹어야 할 군량미까지 나누어 주며, 강화도에 머물고 있는 이유와 전황을 상세히 보고하였었다.권율에게는 한양도성 탈환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였고, 행주산성 전투에서도 큰 공을 세운 후 관악산으로 이동하였다.이렇듯 한낮 의병장의 역할을 넘어 전체적인 판세를 보고 움직이는 김천일에게 합당한 역할이 주어지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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