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정보
나주 최초의 서원을 세운 판결의 달인 학봉 김성일 목사를 기념하여 이름 하게 된 김성일 방은 툇마루 방향으로 가로로 배치되어 있는 두 칸짜리 방이며, 작은 방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은 거실의 형태입니다.학봉 김성일은 임진왜란이 임박한 1590년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습니다 돌아와 "왜가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라는 황윤길과는 달리 "왜는 조선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583년 부임하여 3년간 나주목사를 지낸 김성일은 고을을 맡아 다스리기는 나주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재임 시절 민원 처리에 주력한 그는 오랫동안 끌어온 임씨와 나씨 간의 송사를 해결하였으며, 선정을 베푼 관리로 유명하였습니다.
또한, 금성산 기슭에 대곡서원(나중에 경현서원으로 이름이 바뀜)을 세우고 "동방오현"으로 꼽히는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제향하는 한편 선비들을 학문에 전념하게 하였으며, 그가 목사로 재직하던 1584년 이 지역 선비들과 합심하여 세운 대곡서원은 나주 최초의 서원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료 정보
구분 | 비수기 | 성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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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 주말 | 평일 | 주말 | |
김성일방 | 120,000 | 120,000 | 120,000 | 12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