쳔년 나주목의 숨결 속을 거닐다
읍성(邑城)은 돌로 쌓았다. 주위가 3천 1백 26척이고 높이가 9척이며, 안에 우물이 20개, 샘이 12개, 작은 시내가 하나있다.
- 「신중동국여지승람」나주목편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나주시 남내, 성북, 금남, 교동 일대를 둘러싼 성곽을 "나주읍성"이라 부릅니다. 왕건의 고려 건국 이후 나주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읍성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왕건은 나주 해상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고려 건국의 든든한 토대틀 마련했습니다). 이후 동서남북에 성문을 설치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영산강 뱃길을 타고 와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의 침입에도 대비하였습니다. 읍성은 돌로 쌓았으며, 그 형태는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전체 둘레가 약 3.7km, 면적은 97만 2,600여 ㎡에 달했다고 하니 그 웅장한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나주읍성권은 고려 건국 이래 천여 년간 호남의 중심지였던 나주목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코스로 금성관과 목사내아, 정수루, 나주향교 등 천년목사고을 나주를 대표하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옛 골목길과 고택도 많이 남아 있어 쉬엄쉬엄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구경해야 그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한가롭게 길을 걷다 배가 고프면 나주곰탕의 진미를 맛보러 정수루 인근에 있는 곰탕의 거리로 가면 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요, 나주곰탕 한 그릇을 맛있게 해치우고 나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목사내아를 꼭 들러보세요. <박 2일>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목사내아 금학헌에는 나주시 문화관광 해설사들이 상주하며 방문객들에게 나주읍성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안내를 해주고 있습니다. 나주목사가 된 듯한 기분으로 길을 걸으며 나주가 왜 "전라도의 소경(小京 : 작은 서울)"이라 불렸는지 그 답을 스스로 발견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