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후삼국시대 - "왕건과 견훤이 자웅을 겨루던 격전장"
통일신라시대 나주는 "금성군(錦城郡, 錦山)"이라 칭하다가 효공왕 7년(903) "나주(羅州)"로 개칭되었으며,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의 영지 였습니다. 후삼국시대 나주세력은 왕건과 연합하여 고려왕조 창건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완사천 (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 왕건과 버들낭자가 처음 만난 곳
완사천에서 꽃핀 사랑이야기 고려 개국 전이자 후삼국 정립의 시기인 903년~914년. 왕건은 태봉국 궁예의 부하로 나주에 출진하여 후백제의 견훤과 일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진(障) 위쪽 산 아래에 오색구름이 일어 왕건이 가보니 샘가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목이 탔던 왕건이 물 한 그릇을 달라고 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공손히 주었습니다.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봐 천천히 마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처녀가 바로 나주 토착세력인 오씨 집안 오다련의 딸이었습니다. 왕건은 처녀의 총명함과 미모에 끌려 아내로 맞이하였는데(총명함보다는 미모에 더 끌리지 않았을까요?), 이 여인이 곧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 부인"입니다.
왕이 태어난고장, 나주 고려 건국 후 나주는 "어향(御鄕 : 왕이 태어난 고장)"이라 불렸습니다. 왕건과 장화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무(武)가 고려 제2대 왕 혜종(惠宗)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이 완사천이 있는 마을을 "흥룡동(興龍洞)"이라 하였는데, 왕을 용에 비유한 것으로 "왕이 태어난 동네"라는 의미입니다. 이 샘은 천 년 이상끊임없이 샘솟고 있는데 1986년에 공원으로 정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