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 "일제의 호남 수탈 거점"
일제강점기 나주는 영산포를 중심으로 "일제의 호남 수탈 거점" 역할을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멀리 북간도까지 독립운동의 불길이 번진 1929년 11ㆍ3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가 바로 나주입니다(나주역 댕기머리 사건).
11·3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 구 나주역사(전라남도 기념물 제 183호)
때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 7월 1일. 학교와 나주를 운행하는 호남선이 처음 개통되면서 나주역과 영산포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나주역은 11ㆍ3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알려져 있으며,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하던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들 간의 다툼이 그 발단이 되었습니다. 일명 "나주역 댕기머리 사건"입니다.
나주 학생들의 피 끓는 가슴에 불을 지르다
통학기차 안에서 후쿠다와 다나카 등 일본인 중학생들이 조선인 여학생인 박기옥, 이광춘, 이금자의 댕기를 잡아당기며 희롱하자 이를 본 박기옥의 사촌 동생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에게 "정의의 주먹"을 날려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을 "나주역 댕기머리 사건"이라 부릅니다. 나주 학생들이 이처럼 일본인 학생들과 직접 맞붙게 된 배경에는 영산포에 거점을 둔 일본인들이 나주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고, 읍내의 상권 또한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식민지 나주의 가슴 아픈 현실이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일제 치하에서 울분을 삭이던 나주 학생들의 피 끓는 가슴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소문을 접한 광주 학생들 사이에서 대규모 학생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전국으로 번져 대대적인 11ㆍ3 학생독립운동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나주역이었습니다.
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는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구 나주역사 바로 옆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인 11ㆍ3 학생독립운동의 발단이 된 나주역 사건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고자 건립되었으며, 기념관 내에는 나주 지역의 식민이 치하 상황, 11ㆍ27 나주농업보습학교 학생들과 나주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사건, 나주 출신 학생운동 지도자 등 일제강점기 나주의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비록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은 잃어버렸으나
2001년 7월 10일 기존의 나주역과 영산포역을 통한한 신 나주역이 나주시청 앞에 건립됨으로써 죽림동의 나주역은 "구 나주역"이 되어버렸습니다. 비록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은 잃어버렸으나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대대로 계승하고자 역사 건물을 기념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습니다(당시의 규모와 외형 등이 원래의 모습대로 잘 유지되어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개찰 모습, 역무원들의 근무 모습 등 나주역의 옛 풍경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