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동
- 항동(港洞)(영산1,2통) : 일제때 영산강 수운의 선창마을로 발전하면서 포구마을의 기능을 유지했으므로‘항동(港洞)’이라 불렀다.
- 서은동(영산3통) : 일제강점기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중정의 서편 지역이라‘나시마찌’라 칭했다. 광복 후 일본식 동명을 일부 반영‘서은동(西恩洞)’이라 이름 지었다.
- 행동(영산4통) : 일제강점기 시가지가 형성되면서‘사이와이마마찌’라 칭했다. 광복 후‘행동(幸洞)’이라 불렀다. 지세는 노봉산에서 서쪽으로 내려 서다 등성이를 이루면서 북쪽으로 내려와 당산나무등의 서북편에 자리잡고 있다.
- 중앙동(영산5통) : 광복 후‘중동’이라 부르다가 1960년대 일본식 동명을 일부 반영‘중앙동(中央洞)’이라 불렀으며 1960년대 항동, 서은동, 행동과 더불어 중앙동 관할로 있었다.
- 문화동(영산6,8,9,10통) : 동남쪽에 영산포 시가지일대의 최고봉인 노봉산 (55m)이 등성이를 이루고 서쪽은 당산나무등에서 내려선 나지막한 둔덕이 있으며 북쪽은 영산강을 대하고 있다.
- 평화동(영산7통) : 동남쪽에 영산포 시가지일대의 최고봉인 노봉산(55m)이 등성이를 이루고 서쪽은 당산나무등에서 내려선 나지막한 둔덕이 있으며 북쪽은 영산강을 대하고 있다.
용산동
- 가마태(율정)(영산11통) : 영산강변에 벼랑을 이룬 노봉산(55m) 남쪽에 위치하므로 산마을이란 의미로 터가 변하여 감아터,가마터,가마태로 불렀고, 산이 밭쪽으로 변한 경우 받말,밧말,밤말로 이어지다 한자로 옮기면서 밤 율자가 반영되어‘율정(栗丁)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 용산,계동(영산12통) : 함박산(61m)의 북쪽 자락에 있는 마을로 풍수 해석으로 산의기운을 받은 동네라고‘용산(龍山)’이라 칭한 듯하다. 황구봉(45m)의 등성이에 있는 동네로 황구에서 ‘수(拘)’를 개로 풀어 칭한 것을 한자화 하면서‘계등(桂嶝)’으로 표기 본래 황구가 너른(넓은)개에 멈추는 봉우리 라는 의미를 지녔으며 너른개가 누런개로 변화하여 한자화되면서 황구(黃拘)가 되었다고 본다면 계등촌은 등성이에서 들로 나가는 어귀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 용승(구새마을촌)(영산13통) : 용산마을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함박산의용이 기운을 돋구어 주기를 소망하며 2000년 주민들의 뜻을 모아 새마을촌에서‘용승(龍承)으로 새로 지은 동네이름이다.
- 용산주공아파트촌(영산14,22,23통) : 1차(14통)지역은 1991년 준공한 11평과12평규모288세대로 6층총5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2차(22,23통)지역은 1999년 준공한 15평과19평규모 498세대 15층총6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덕동
- 부춘, 작은몰(영산15통) : 황구봉의 남쪽 산자락에 들러싸인 마을로 산의옛말이 붇.붓로 붇의골,부츠골,부춘골로 변하였으며 한자로 옮기면서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될 것을 염원하며 부촌,부춘으로 표기하였으며, 실제이마을에는 영산포 일대에서 부자로 소문난 하부자와윤부자가 살았다. 부춘마을의 남쪽 등성이 바로 너머에 있는 뜸과 작은마을의 의미를 담아작은몰로 칭한 것으로 짐작된다.
- 덕치,금계(영산16통) : 더우재를 한자화하면서 덕치(德峙기)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하며, 금계 동네 아래쪽에는 도내기시암이 있고 꿀뫼봉 아홉바위지석묘 암석에서 흘러나온 영천된 옹달샘이 있어 여인들이 아이가 없거나액운이 있으면 정한수를 떠 놓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평산동
- 화산(花山),옥산(영산17통) : 화산은 동네가 긴 곳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화산마을 북쪽 뒷골을 거쳐 들어서는 동네 남동쪽에는 여성의 엉덩이 모양을 이른 옥녀봉이 있고 남서쪽으로 내려선 능선을 떠라서 혈이 맺혀 있어 옥산은 이른바‘옥녀탄금형’이라 칭하고있다.
- 가자울(가척),송림(松林),장유(長柳),태신(太申)(영산18통) 태봉산 골짜기에서 가재가 많이 나온다해서‘가재울’이라고 불렀다는설이 있으며, 가자울과 함께 한 마을로 통하는데 이때 각각 첫 자를 따서 가송(加松)으로 칭한다. 장유는 작고 좁은 들을 의미하는‘잔버들’이장버들로 변화하여 한자화 할 때 장류(長柳)로 표기하였고, 태신은 태봉 산(100m)의 북쪽에 새로 생긴 동네이며 우산저수지가 있다.
- 평죽,부동촌(영산19통) : 단산봉(33m) 기슭에 대나무가 많은 동네로 평죽 이라 칭했으며, 단산봉에서 봉황이 죽순을 먹기 위해 대나무가 많이 있는 동네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조리명당’이라는 풍수설도 전한다.
관정동
- 성정,관동,옥정(영산20통) : 성정은 관동 북동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신기촌이라 했다가 현재는 성정으로 칭하며, 관동은 갈대밭이 많아 쉽게 눈에 띄지 않는곳이어서 피난지라는 의미를 지닌 터에서 기원했다는 설과 함께 역대로 마을에서 벼슬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한다.
- 승학(관골),장구동,우산(영산21통) : 영산강변의 가장자리터에 입지했다는 의미를 지닌 갓골이 관골로 변하였다가 관동과 구별하기 위하여 승학이라 칭한 것으로 추정된다.장구동은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 주위에 소나무밭으로 이어지는 잔구가 있어 장구로 변했을 개연성도 있다.